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워싱턴 (문단 편집) === 결혼 === 1759년 워싱턴은 마사 커스티스(Martha Dandridge Custis)라는 부유한 과부[* 당대 버지니아 식민지 최고의 갑부였던 대니얼 파크 커스티스(Daniel Parke Custis)와 결혼했는데 1757년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남편의 재산이었던 17,000 에이커에 달하는 토지와 300명에 달하는 노예를 상속받았다.]와 결혼, 당대 미국 최대 갑부[* 결혼 후 워싱턴의 토지는 22,000 [[에이커]]가 되었다(부인 측 토지가 1만 7천 에이커). 워싱턴 자신의 상속재산 포함이다. 조지 워싱턴의 재산을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5억 8,700만 달러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두번째로 재산이 많은 대통령이다.] 중 한 명이 되었다. 마사는 매우 지적이고 우아한 태도를 가진 여자로서 광대한 농장 관리에도 탁월함을 보여줘 둘의 결혼 생활은 워싱턴이 사망할 때까지 원만하게 지속된다. 다만 아내가 이전 결혼에서 출산경험이 있음에도 워싱턴과의 사이에선 아이를 낳지 못했다.[* 워싱턴이 10명의 사생아를 두었다는 낭설이 있는데, 근거가 없다.] 이후 아내가 사별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의붓자식인 존 파크 커스티스(John Parke Custis)와 팻시 커스티스(Martha Parke "Patsy" Custis)를 입양해 키웠는데[* 마사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존 파크 커스티스 위로 아들인 대니얼과 프랜시스, 2명을 더 낳았으나 둘 다 마사가 워싱턴과 재혼하기 전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존 파크 커스티스가 사망하자[* 의붓 아버지인 워싱턴을 따라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으나 1781년 [[요크타운 전투]] 직후 병으로 사망했다.], 존 파크 커스티스의 아들이자 자신의 의붓손자인 조지 워싱턴 파크 커스티스(George Washington Parke Custis)를 입양해서 아내의 전 남편의 후손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워싱턴은 본인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의 재산 중 원래 워싱턴 가문의 재산은 조카 부시로드 워싱턴(Bushrod Washington)에게 상속한다. 그런가 하면 당시 법적으로 금지된 지역을 개척해 재산을 불리는 [[꼼수]]도 부렸다. 이 당시 영국 측은 [[13개 식민지]](미국)가 끊임없이 땅을 개척하도록 놔두면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사사건건 부딪히고, 그러다 보면 그 세력이 본국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척에 상당한 제약을 가했고, 심지어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으로는 가지도 못하게 법으로 금할 정도였는데 이를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어기고 열심히 재산을 부풀린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